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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한글, 훈민정음 기원설(訓民正音起源說)이 궁금하다.

  • 한글세계화운동연합
  • 2018-04-03 22: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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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음 문자인 훈민정음이 어느 문자의 계통을 이어받아 창제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하는 설명이나 학설을 훈민정음 기원설이라고 한다.

 

 

1940년에 ≪훈민정음 訓民正音≫의 원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여러 갈래의 기원설이 존재했으나, 원본 ≪훈민정음≫의 제자해(制字解)에서 “정음이십팔자 각상기형이제지(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라고 하여 훈민정음의 창제가 ‘상형’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밝히고 있어 다른 문자로부터의 기원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다.

 

 

아직도 제자해의 “各象其形而制之(각각 그 꼴을 본떠 만들었다).”와 원본 ≪훈민정음≫ 끝 부분의 정인지 서문에 “象形而字倣古篆(상형을 하되 글자가 고전과 비슷하다. 또는 고전을 본떠 상형하였다)”이라는 구절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여러 기원설이 주장되고 있다.

 

음소 문자인 훈민정음은 그 문자적인 성격에 있어 한자와 다르나, 그 제자(制字)의 기본 방식에 있어서는 한자의 제자법을 따를 수도 있다. 한자 제자법의 바탕이 되는 것은 육서법(六書法)이며, 그 중에서도 상형과 지사(指事)가 기본이 된다.

 

‘각상기형이제지各象其形而制之’와 ‘상형이자방고전象形而字倣古篆’은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가 한자와 마찬가지로 ‘상형’이며, 이렇게 해서 자형(字形)이 고전(古篆)과 비슷하게 되었음을 설명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최만리의 반대 상소문 중에 나타나는 “글자의 꼴이 비록 옛날의 전자(篆字)를 본떴으나(字形雖倣古之篆文)”라는 구절도 어디까지나 자형에 대한 것이지 제자 방식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하면 위와 같은 설명은 합리적인 것이 된다.

 

‘상형이자방고전象形而字倣古篆’은 ‘고전’을 참고로 하여 먼저 제자한 다음 상형설을 결부시켰음을 설명한 글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 경우에는 원나라의 파스파 글자까지 결부시켜,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파스파 글자를 참고하되 고전 글자와 비슷하게 생긴 파스파 글자와 마찬가지로 훈민정음도 고전 글자처럼 제자하고, 여기에 상형설을 결부시킨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음소 문자인 훈민정음은 글자의 성격으로 보아서는 몽골 글자나 파스파 글자와 같고, 음절 단위로 표기하는 방식으로 보아서는 한자나 파스파 글자와 같은데, 지금까지 논의되어 온 기원설은 제자 방식이나 자체(字體)의 유사성에 더 중점을 두고 설명해 온 느낌이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지금까지의 기원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발음기관 상형기원설 : ‘정음자(正音字)’가 모두 발음할 때의 발음 기관의 상태나 작용을 본떠 만들어졌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신경준(申景濬)·홍양호(洪良浩)·최현배(崔鉉培) 등 가장 많은 학자들이 이 설을 주장하였다.

 

② 고전기원설(古篆起源說) : ≪세종실록≫ 세종 25년 12월조(권 제102, 42장)에 “이 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시니, 그 글자가 고전을 본떴다(시월상친제언문이십팔자기자방고전是月上親製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라고만 기록되어 있어 고전 기원설이 나오게 되었으며, 역시 ≪세종실록≫에 기재되어 있는 최만리 등의 훈민정음 창제 반대 상소문에도 “글자의 꼴이 비록 옛날의 전자를 본떴으나(字形雖倣古之篆文)”(세종 26년 2월)라고 되어 있어 이 설을 더욱 뒷받침하였다.

 

또, 세종 28년 9월조에 실려 있는 정인지의 ≪훈민정음≫ 서문 가운데 ‘상형이자방고전象形而字倣古篆’이라고 구절도 이 기원설의 근거로 내세워지고 있는데, 다만 ‘象形而字倣古篆’에서 ‘상형’과 ‘자방고전’을 분리시켜 ‘상형’은 제자 방식을 말한 것이고, ‘자방고전’은 최만리가 지적한 대로 자형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 기원설은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 靑莊館全書≫에 실려 있는 <앙엽기 盎葉記>나 일부 서양학자들의 저술에서 주장되었으며, 최근의 국내 학자 가운데에도 이 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③ 범자기원설(梵字起源說) : 조선 성종 때 성현(成俔)이 ≪용재총화 慵齋叢話≫에서 훈민정음을 ‘其字體 依梵字爲之’라고 말한 이후로 광해군 때 이수광(李睟光)이 ≪지봉유설 芝峰類說≫ 권18에서 “우리 나라 언서는 글자의 꼴이 전부 범자를 본떴다(我國諺書字樣 全倣梵字). ”라고 한 데서 범자기원설이 비롯되었는데, 이는 주로 자체의 유사성을 두고 말한 것이다.

 

그 뒤 영조 때의 황윤석(黃胤錫), 1930년대의 이능화(李能和) 등 국내외 몇몇 학자들이 이 설을 주장하였으나 근래에는 이를 주장하는 이가 없어졌다.

 

④ 몽골자 기원설 : 조선 숙종 때 이익(李翼)이 ≪성호사설≫에서 훈민정음이 몽골글자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순조 때 유희(柳僖)도 ≪언문지 諺文志≫에서 ‘몽골의 글자모양(蒙古字樣)’을 따라 훈민정음이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⑤ 범자와 몽골자 기원설 : 이 기원설은 이능화가 ≪조선불교통사 朝鮮佛敎通史≫에서 주장한 것이다.

 

⑥ 고대문자 기원설 : 영조 때 신경준이 ≪훈민정음운해 訓民正音韻解≫ 서문에서 “우리나라(東方)에는 옛날에 민간이 쓰는 문자가 있었다(東方舊有俗用文字).”라고 한 것과, 기타 비문(碑文) 등의 글을 근거로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도 고대문자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설이다.

 

⑦ 역리 기원설(易理起源說) : 훈민정음 창제 당시 그 학문적 배경이 되었던 성리학을 확대 해석, 훈민정음이 성리학의 바탕이 된 역학의 원리에 따라 창제되었다고 하는 설이다.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 등이 이에 속한다.

 

⑧ 창문 상형 기원설 : 서양학자 에카르트(Eckardt, P. A.)가 주장한 것이다.

 

⑨ 기-성문도 기원설(起―成文圖起源說) : 자체(字體)의 유사성보다도 제자 방식을 가지고 훈민정음의 기원을 설명한 것이다. 정초(鄭樵)의 ≪육서략 六書略≫에는 한 항목으로서 ‘기―성문도’가 있는데, 여기에서 상형의 기본이 되는 자획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훈민정음 창제 때 이것을 참고로 하여 한글의 자형을 제자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설이다.

 

⑩ 기타의 기원설 : 서장문자(西藏文字) 기원설, 팔리 문자(Pali 文字) 기원설, 거란문자·여진문자기원설, 일본 신대문자(神代文字) 기원설, 악리(樂理) 기원설 등이 있으나 모두 참고할 만한 가치가 별로 없는 견해들이다.

 

다만, 훈민정음과 같은 음소 문자를 창제할 때 15세기 당시의 이웃 나라들의 글자는 물론, 문헌상으로 알려져 있던 모든 글자들을 참고했을 것임은 짐작할 만한 일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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