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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한글, 세종조 어문 정책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 한글세계화운동연합
  • 2018-04-03 22: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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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때의 언어관은 바른 정치는 바른 소리(正音)에서 나온다는 성리학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즉, 올바른 소리를 모르고서는 성인지도(聖人之道)를 제대로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러한 사상이 형성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서 皇極經世書≫와 ≪홍무정운 洪武正韻≫이었다.

 

두 책은 모두 그 이전 운서의 음이 어느 한 지방의 음만을 대표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중국 어느 지방에서나 통할 수 있는 정음(正音, 標準音)을 확립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언어관을 따르면 언어의 방언적 분포나 변천은 잘못된 것이고 고쳐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훈민정음의 창제에는 비단 고유어의 표기 수단을 만든다는 실용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바른 소리를 가르친다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이는 훈민정음을 만든 뒤 시행한 최초의 여러 사업 가운데 상당히 비중이 높았던 ≪동국정운 東國正韻≫과 ≪홍무정운역훈 洪武正韻譯訓≫의 편찬에서도 드러난다.

 

≪동국정운≫은 그 당시 우리의 한자음을 중국음과 비교해 볼 때 왜곡된 것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바로잡을 목적으로 편찬된 것이다. 물론 바로잡는다고 해도 완전히 중국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하지도 않았지만, 이러한 목적 때문에 ≪동국정운≫은 당시의 현실 한자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게 편찬되었으며, 당시의 중국음에 근접시키려는 노력을 담고 있었다.

 

≪동국정운≫은 당시의 한자음을 통일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나, 현실 한자음과의 거리로 인하여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결국 30년 만에 쓰이지 않게 되었다. ≪홍무정운≫은 명나라 홍무제(洪武帝)가 중국의 한자음을 통일시키려는 목적으로 편찬한 책이었는데, ≪동국정운≫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인위적인 노력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세종조에는 이 책의 음을 중국의 표준 발음으로 믿고 있었고, 따라서 ≪홍무정운역훈≫은 중국 표준 발음을 교육시키려는 목적으로 편찬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면 ‘정음사상(正音思想)’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한 동인(動因)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또 건국 초부터 인근 여러 나라와의 외교 관계가 중요한 국가 시책의 하나로 대두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외교 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외국어에 능통한 역학자(譯學者)의 양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위하여 조정에서는 1393년(태조 2) 9월 사역원(司譯院)을 설치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이 곳에서는 사학(四學)이라 하여 한학(漢學)·몽학(蒙學)·왜학(倭學)·여진학(女眞學)을 교육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한학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외국어를 교육하는 데에는 정확한 발음 기호가 필수적이었고, 이러한 필요에 부응한 것이 훈민정음이었다.

 

훈민정음과 그와 관련된 사업(≪동국정운≫ 등의 편찬과 여러 가지 번역 사업)을 여러 신하들의 반대로 공식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웠던 세종은 여러 개의 사설 기관을 마련했는데,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언문청이었다(문종 때의 기록으로는 正音廳). 실록에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이 곳에서 훈민정음과 그와 관련된 사업을 추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책방(冊房)·묵방(墨房)·화빈방(火鑌房)·조각방(彫刻房) 등을 사설 기관으로 두었는데, 이들도 훈민정음의 편찬 및 그에 이은 번역 사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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