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마당

한글(한국어)세계화운동연합

HANGUL GLOBALIZATION MOVEMENT UNION

한글 자료실

. 한글, 누가 왜 만들었는가?

  • 한글세계화운동연합
  • 2018-04-03 22:50:00
  • 114.199.135.148

세종은 백성들의 딱한 사정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던 성군으로, 주체성 강한 혁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문은 남의 글이므로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더라도 매우 어색하여 뜻을 제대로 전할 수가 없었다.

 

그 밖의 다른 나라 글자들은 도저히 빌려 쓸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당시의 상황은 새 글자를 만들어 낼 만한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고려 말기 몽고에게 당한 곤욕으로, 그리고 원나라와 명나라의 갈음 시기에 즈음하여, 나라 안에서는 자아 의식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둘째, 주위의 민족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글자를 가지고 있었으나 우리는 한자를 빌려 썼는데, 그것으로 우리말을 적는 것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정인지의 표현을 빌리면, 한자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이었던 이두글[吏讀文]은 “막혀 잘 통하지 않고, 비단 품위가 없고 체계가 없어 상고할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말을 적는 데 있어서는 만에 하나도 제대로 전달하지를 못한다(或澁或窒 非但鄙陋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혹삽혹칠 비단비루무계이이 지어언어지간 칙부능달기만일언).(훈민정음 해례) ”고 하였다. 이처럼 일반 백성의 글자 생활은 극도로 빈곤 상태에 있었다.

 

셋째, 세종의 개인적인 역량은 새 글자를 만드는 데 크게 작용하였다. 왕은 학문을 좋아하여 성군으로서의 도리를 깊이 체득하였고, 외국 세력에 대하여 우리를 지키려는 주체성이 강했으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민본 정신이 투철했던데다 혁신적인 정책을 수행해 나가는 과감한 성격을 겸비하고 있었다.

 

넷째, 집현전에는 세종의 정책을 도울 만한 많은 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다섯째,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원만히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중국말의 통역을 길러야 했는데, 그들을 과학적으로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중국말의 소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중국 운학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이 운학의 체계는 새 글자를 만들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