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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이 훈민정음을 지켜내기까지의 우여곡절

  • 한글세계화운동연합
  • 2018-04-03 22: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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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골목에 위치한 간송미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다. 한국의 국보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 중 하나인 간송미술관이 세워진 것은 1938년. 간송 전형필에 의해서다. 우리 문화유산을 수집하는데 헌신했던 그가 찾아낸 최고의 문화유산은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그가 이 책을 찾아내 지켜내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 훈민정음을 지킨 간송 전형필. 2.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 서울 종로에서 중추원 의관의 아들로 태어난 간송 전형필. 그의 아버지는 종로 일대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대부호로 방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와세다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전형필은 토지 10만석의 거대한 재산을 상속받는다. 일본의 식민통치 하에 있던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많은 골동품과 고서화가 일본으로 밀반출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리 문화재가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전형필은 ‘한남서림’이라는 고서점을 인수한다.

 

전형필은 민족문화 전통을 단절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문화의 결정체인 미술품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스승인 오세창을 따라다니며 문화재들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전국의 거간꾼과 수장가를 찾아다니며 문화재를 구입하였고, 국내 문화재가 일본의 수장가들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몇 배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미 일본으로 건너간 문화재 중에서도 되찾아 와야 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서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했다.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1938년 개인박물관인 보화각을 세웠다. 간송미술관의 전신으로 조선의 보배를 두는 집이라는 의미다. 한남서림으로 들어오는 책 중 진서나 희귀본이 있으면 학자들과 함께 살핀 후, 그 가치가 확인되면 보화각에 설치한 ‘간송문고’로 옮겼다. 당시 동국정운,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등 소중한 자료들이 이곳에 모아졌다.

 

3. 훈민정음을 만나다 1943년 6월. 한남서림에 앉아있던 간송의 눈에 빠른 걸음으로 서점 앞을 지나는 고서중개인이 보였다. 인사를 나누며 무슨 일이냐 물으니 경상북도 안동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타났는데, 책 주인이 1000원을 부르기에 돈을 구하러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당시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때는 일본이 한글 사용을 철저히 금하고 있던 시기. 만약 이 책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조선총독부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 할 것이 뻔했다. 한 해 전인 1942년 조선어학회 사전이 터져 한글한자들이 모두 잡혀 들어가고, 한글 탄압정책을 펴던 어려운 상황이었다. 책 주인이 불렀다는 돈 천원은 당시 서울의 큰 기와집 한 채 값이었다.

 

간송은 중개인에게 즉시 1만1천원을 건네며 책 주인에게 만원을 전하고 천원은 수고비로 받으라 말했다. "훈민정음 같은 보물은 적어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전형필의 손에 훈민정음 원본이 들어오게 되었다. 4. 훈민정음을 지켜내다 보물에 해당하는 귀중본을 손에 넣었지만 그는 훈민정음이 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친다. 그리고 1945년 광복 후에야 세상에 공개했다. 하지만 또 다시 위기가 닥쳤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전형필은 애써 모아둔 문화재들을 그대로 두고 피난을 가야 했다. 서둘러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훈민정음은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챙겨갔다. 혼란스러운 피난길에서도 훈민정음을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은 극진했다.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낮에는 품고 다니고 밤에는 베개 삼아 베고 자며 한 순간도 몸에서 떼어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속에서도 지켜낸 훈민정음 해례본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된다. 그리고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손에 흘러들어가거나 훼손될 위기에 처한 우리의 문화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쏟아부은 간송. 개인의 안위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그의 집념과 의지 덕분에 훈민정음 해례본은 지금까지 전해져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높이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훈민정음 3부, 훈민정음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문화유산채널, 한국문화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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