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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한국어)세계화운동연합

HANGUL GLOBALIZATION MOVEMENT UNION

세계한글글쓰기대전

[산문] 한글이 맺어준 인연/ 정지은. 아르헨티나 <제1회 세계한글글쓰기대전 수상작품>

  • 한글세계화운동연합
  • 2021-04-13 10:16:00
  • 120.50.72.150

정지은/ 아르헨티나토요한국학교

 

“걱정하지 마. 지금은 친구들이 영어와 스페인어를 잘하는 게 부럽겠지만, 머지않아 너는 영어와 스페인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잘하게 될 거야.”

만 5살 때 이민을 나와 처음으로 유치원에 가던 날 부모님께서는 이런 말로 나를 격려해 주셨다. 하지만 코스타리카라는 중미의 나라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자부심이 될 일이 아니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고, 당장 나에게 중요한 것은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과 친해지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코스타리카는 작지만 아름다웠고, 여유롭고 친절한 사람들의 나라였다. 맑은 공기에 푸른 나무들이 넘쳐났으며, 저 멀리 산들에 걸린 구름이 참 아름다운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떨리는 첫 등교 날,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엄마가 머리를 단정하게 빗겨주셨고 전날 미리 준비해둔 교복을 입었다. 차를 타고 유치원에 가는 동안 내 안에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선생님들은 정말 친절하셨다.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날 위해 큰 몸짓으로 최대한 이해를 도왔고,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해주셨다. 덕분에 친구들은 웃으며 다가와 주었고, 블럭을 쌓거나 놀이터에 나갈 때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하지만 밖에서 열심히 뛰어놀다 들어와 동그란 책상에 모여앉아 있으면, 나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께서 이해 못 할 말들을 하시고 나면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어떤 아이들은 책가방을 찾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가 하면, 어떤 아이들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는 연필을 꼭 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 나는 한 박자 늦게 자리에서 일어나 우물쭈물 나의 책가방을 집어 들고는 다른 아이들을 살피며 준비물을 파악해야 했다. 그런 나를 발견한 선생님은 나에게 다가와서는 가방에서 직접 연필과 가위를 꺼내주셨다.

‘내가 할 수 있는데….’

속상한 얼굴로 쳐다보았지만, 선생님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 난감한 표정으로 되려 나를 살피셨다.

언어의 장벽에 막혀 이런 쉬운 것조차 직접 할 수 없게 되다니. 하지만 아무리 아쉬워해도 별수 없었다.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는 이상 이런 일상들의 반복일 뿐이었다. 몸짓으로 소통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기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선생님의 손을 이끌고 화장실 문 앞까지 가야 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데에 있어 한국어는 쓸데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는 데 성공하였다.

글로리는 내가 유치원에 간 첫날부터 처음 보는 외국인 친구가 신기한 듯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말을 걸어 주었다. 또 수업 시간에는 늘 달려와 나의 옆자리에 앉았고 쉬는 시간에는 함께 그네를 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스페인어를 못 하면 글로리가 한국어를 하게 하면 되잖아?’ 그때부터 나는 글로리에게 차근차근 한글 단어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건 지우개야. 따라 해봐, 지 우 개.”

글로리는 금새 한국어 단어들을 습득하기 시작했고 선생님의 지도에도 우왕좌왕하는 나를 보면 옆에서 ‘종이, 종이. 가방, 종이.’라며 어눌한 한국어로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어느새 글로리는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나에게 한국 단어들을 물어봤고 등굣길에 만나면 멀리서부터 달려오며 한국말로 ‘안녕!’ 하고 인사해주었다.

또한 당시에 한글로 된 나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글로리는 같은 반 아이들 사이에서 나의 이름을 가장 정확히 발음할 줄 아는 것에 대해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나에게 한글은 재미있는 소통의 수단이 되어 있었다.

단짝이 된 우리의 엄마들도 서로 친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글로리의 엄마는 글로리가 집에서 어느 순간 이상한 단어들을 사용해 가끔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며 굉장히 재미있어했다. 더불어 글로리의 집에서는 글로리의 한글 사용이 항상 화젯거리이자 이야깃거리가 되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우리는 친하게 지냈고, 우리는 가끔 글로리네 가족을 초대해 집에서 한국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학교에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가는 날이면 글로리는 누구보다 반가워했고, 나로 인해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글로리네 가족은 한글과 한국의 문화에 대한 호감을 키우게 되었다.

이렇듯 나는 글로리 덕분에 처음 코스타리카에서 적응하는 데에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줄로만 알았던 한글은 나에게 매우 소중한 친구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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