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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글글쓰기대전

[산문] 나의 삶/ 안향미. 일본/ <제1회 세계한글글쓰기대전 수상작품>

  • 한글세계화운동연합
  • 2021-04-13 09:40:00
  • 120.50.72.150

안향미/ 일본 코리아국제학원


나는 일본에서 가장 재일동포가 많은 이쿠노에서 태어나 자랐다. 내가 사는 이쿠노라는 지역에는 일본최대의 코리아타운이 있다.

코리아타운은 1945년 일본의 패전 후 전쟁 전의 도항자의 3분의 2 정도가 제주도에 돌아갔지만 1948년에 일어난 제주도 4.3 사건 이후 다시 많은 제주도 출신자가 일본에 건너왔다. 이런 경위로 전쟁 전 도항자, 재도항자, 전후 도항자로 나뉘어있지만 모두 당지의 조선시장을 중심으로 생활하며 일본 최대의 재일동포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코리아타운은 1993년부터 ‘코리아타운’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조선시장이라고 불렸고 지금도 주변 주민들 그리고 나도 코리아타운을 조선시장이라고 부른다. 여기는 재일동포에게 있어서 식재료나 일용품 등이 풍부하게 갖춰져 있는 생활과 밀접한 곳이었다. 내 할머니나 할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내 아버지 또한 조선시장에서 태어나 자라셨다.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는 한글은 읽을 수 있지만 말은 일본어 밖에 못하신다. 그래서 아버지는 나를 조선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이때부터 나는 한글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입학하자마자 나는 우리말과 한글을 배웠다. 처음으로 한글을 배웠을 때 나 이외의 친구들은 유치원부터 조선학교에 다닌 애들이 많아서 거의 다 쓰고 읽을 수 있어서 난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따라가려고 노력을 했다. 매일 아침마다 깨면 한글을 쓰고 외우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를 끝낸 후 다시 한글을 쓰고 외웠다. 1 학기 마지막쯤에는 쓰고 읽는 것을 다 할 수 있게 되어서 겨우 친구들을 따라갈 수 있었다. 2학기에는 친구들이랑 조금씩 우리말로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조선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우리말 이외로는 소통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우리말로 친구들이랑 말을 나눴던 것이 너무 기분 좋았다. 그 기분은 지금도 못 잊을 만큼 좋았다. 조선학교에서는 조선의 역사나 문화도 배운다. 조선반도의 역사를 처음으로 배웠을 때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 시기(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들었을 때는 너무 잔인하고 끔찍해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그 이후 나의 아버지가 직접 증조할머니로부터 들은 내 조상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랑 많이 닮은 내용이었다. 증조할머니께서는 동생 2 명과 노동을 했고 먹는 밥은 소금과 물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자 어느 날 아는 분이 증조할머니에게 이거라도 먹으라고 푸성귀를 주셨다고 한다. 증조할머니께서는 그걸로 국을 만들어서 동생들이랑 같이 나누어 드셨다. 국을 먹은 후 어린 동생 2 명은 사망했다.

그 이유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린 동생들이 작은 몸으로 아무것도 안 먹다가 갑자기 먹어서 위장에 부담이 가서 사망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어린 동생들이 고향의 글씨도 못 배우고 학교에도 못 다녔다는 것이…. 그래서 나는 조선학교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조선학교를 다니다가 시야를 넓히려고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이쿠노에 있는 일본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학생 중 약 70%가 재일동포들이었다. 그래서 이 중학교에는 민족학급이라는 한글과 우리말을 배우는 시간도 있었다. 민족학급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이유는 내가 조선학교에서 배운 말과 전혀 다른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한글이나 단어는 조선학교에서 배운 것과 똑같았지만 억양이 너무 달랐다. 조선학교는 특유의 억양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우리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 연예, 책 등 독학으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중학교에서는 한글을 읽을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가끔씩 한글이나 우리말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 친구들은 한글이나 우리말을 배워서 너무 기쁘다고 말해주었다. 그때 나도 가르치는 것이 즐거웠고 기뻐해주니 기분도 좋았다. 그렇게 3 년을 지내다가 다시 우리말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져서 지금 내가 재학 중인 코리아국제학원에 입학을 했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의 영향으로 입학식도 못하고 수업은 원격으로 진행했다.

코리아국제학원에서는 한국이나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과 수업을 한다. 그래서 우리말 수업은 신선하고 신난다. 앞으로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재일동포 중에 한글을 모르는 사람 우리말을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전달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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