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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가 터지자, 프랑스 정부는 그 해 9월 유엔의 결의에 따라 한국전쟁에 참전키로 결정했다.
장 루이 군의관은 종군을 지원하여 프랑스군의 의무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자신이 2차대전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5년간 감금생활을 하여 누구보다도 자유의 소중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프랑스 참전군은 원주와 지평리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다.
장 루이 소령은 부상병의 치료가 뜸하면 진료 가방을 들고 주민들을 치료해 주었다. 의약품이 없어 신음하는 농촌 주민을 도와주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었다.
1951년 5월 8일, 철쭉꽃이 만발했을 때 일이다.
이웃 부대로부터 수색대 2명이 중공군이 설치한 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왔다. 지프를 손수 운전하고 현장에 달려간 장 루이 소령은 부상자를 응급 치료했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던 그는 그만 지뢰를 밟았다. 장 루이는 이역 땅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에서 33세의 젊은 나이로 산화했다.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십자훈장’을 수여했다.
그의 동상이 새겨진 에펠탑 모양의 추모비가 지금 홍천읍 무궁화 공원에 세워져 그의 고귀한 뜻을 영원히 기리고 있다.
☞ 생각하는 시간
1. 장 루이 소령이 부상병 치료가 뜸하면 이웃 마을을 다닌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장 루이 소령은 다른 나라에 와서까지 봉사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평소에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떤 일을 하였는가 생각해 봅시다.
3. 장 루이 소령에게 본 받아야할 점을 이야기해 봅시다.
4. 이 글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달라진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