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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임금인 의자왕이 사비성(오늘날의 부여)에 호화 궁전을 지어 놓고 아리따운 궁녀들과 더불어 술과 노래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당시 한창 세력을 떨치고 있던 신라의 제29대 태종 무열왕은 때를 놓칠 세라 당나라의 지원을 받아 마지막 백제 공격에 나섰습니다.
신라의 명장 김유신은 5만 군사를 이끌고 황산벌(오늘날의 연산)로 출정하였습니다. 그 때 백제에는 계백이라는 용맹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계백은 전쟁에 출전하기에 앞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신라의 종이 되느니 차라리 백제인으로 죽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하고 가족들의 목을 차례차례 베고 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김유신의 5만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산벌로 나갔습니다.
이 전투에서 신라군은 예기치 않게도 패배하자 신라의 품일 장군은 자기의 아들 관창을 불러서 “지금은 누군가 우리 군대의 사기를 북돋워줄 사람이 필요하다. 자아, 그 일을 네가 맡아 주지 않겠느냐?”
그때 관창은 겨우 16세의 소년이었습니다.
화랑 정신을 익힌 용맹한 관창은 아버지의 명령을 받자마자 말을 타고 적진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는 용감히 싸우다 계백장군에 사로잡히는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너의 용맹성을 가상히 여겨 이번만은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다시 내 앞에 나타나는 일이 없도록 해라.”그를 다시 신라 진영으로 돌려보냈다. 관창이 돌아오자 신라의 품일 장군은 아들을 꾸짖어 말했습니다.
“전쟁에서 구차히 목숨을 구해 뒷걸음을 치다니 그것이 화랑의 정신이란 말이냐?” 관창은 이를 악물고 말 위에 올랐습니다. “다시는 살아오지 않겠습니다.” 백제군을 무찌르던 관창은 다시 사로잡히는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계백은 관창의 목을 베어 그 목을 말머리에 매달아 신라 진영으로 보냈습니다. 관창의 머리가 돌아오자 신라군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이 기세로 신라는 이기고 이 싸움은 곧 백제의 최후를 장식한 싸움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