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한국어)세계화운동연합
옛날의 임금님 중에는 백성들의 생활을 살피기 위하여 변복(옷을 바꿔 입음)을 하고 아무도 몰라보게 이곳 저곳을 다닌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니면서 백성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몸소 살피려는 뜻이었지요.
이 이야기도 그런 임금님이 경험한 이야기중의 하나입니다.
어느 날 밤, 임금님은 한가한 틈을 타서 옷을 바꿔 입고 한 시골 동네를 거닐었습니다. 그 때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임금님은 노래소리를 따라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소리는 골목 끝의 조그마한 오막살이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남자의 노래 소리 속에는 여자의 울음 소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이상히 여기며 그 집에 가까이 다가가서 뚫어진 들창 구멍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 순간 임금님은 감짝 놀랐습니다. 희미한 호롱불이 비치고 있는 방안에는 괴상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촐하게 차려진 술상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상복을 입은 젊은 남자였습니다.
젊은 상제 앞에서는 머리를 깎은 여자 중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술상 앞에 한 노파가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임금님은 궁금히 여기고 그 집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노래하던 남자가 나왔습니다. “이 밤중에 누구신지요?”
“저는 지나가는 객입니다만 한 말씀 여쭐까 하여 들렀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온지……?”
“잠깐 엿보았는데 한쪽에서는 흐느끼고, 한쪽에서는 춤을 추고 있으니 무슨 일인지 묻는 것입니다.”
“이미 보셨다니 다 얘기 하리다. 사실은 오늘이 우리 어머님의 회갑 날이지요, 가세가 어려워 한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님의 회갑을 잘 차려 드리고 싶었습니다만 그것이 여의치가 않아서…….”
여기까지 이야기한 젊은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여보시오.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내 회갑날 상을 차리고 싶어도 워낙 가난한 살림이고 보니 고기 한 근을 제대로 살 수가 없었겠지요. 그래서 생각다 못해 효성 깊은 며느리가 제 머리를 잘라 팔았다오. 그 돈으로 이 상을 차렸지요.
나를 즐겁게 해 준다고 아들은 노래를 부르고 며느리는 춤을 추는군요. 이 늙은이는 그저 설움이 북받쳐서 울었던 것입니다.”
노파의 이야기를 들은 임금님은 생각에 잠겨 있다 말하기를 “그런데 젊은 양반은 어째서 과거를 보지 않으시는지요?” “예, 저는 지금 상중입니다. 2년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지요. 상중이라 과거를 볼 수 없어 공부만 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는 그해 가을에 탈복을 하고 과거를 보러 갔습니다.
드디어 글제(글의 제목)가 나붙었는데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글제였습니다. 그 글제는 ‘상제는 노래하고, 중은 춤추고, 늙은이는 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자기가 겪었던 사정이었으므로 남달리 감동깊은 글을 쓸수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당당히 장원으로 급제하게 되었습니다. 상을 받기 위하여 임금님 앞에 불려 갔을 때 젊은이는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자기 집에 들렀던 분이 바로 임금님이었기 때문입니다.